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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이름 석 자를 써놓고, 깜박거리는 커서를 둔 채,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이름. 그의 이름 앞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그 누가 있을까. 분데스리가의 영웅, 한국 축구의 신화, 세계 축구계의 축복이었던 존재. 이러한 수식어로도 그를 나타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의 MVP 수상, UEFA컵 2회 우승의 주역, 세계 축구선수 11에 선정, 분데스리가 연봉 랭킹 3위, 독일의 귀화 추진 등의 그의 커리어가 보여주는 위대함은 현재의 박지성의 위대함,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분데스리가로 날아가기 전, 그는 "반드시 돌아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일의 귀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선진 축구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차이는 유소년 축구에서부터의 차이였고, 이러한 그의 인식은 현 유소년 축구 클럽의 최고라 일컬어지는, 'FC 슛돌이'의 목표이자 이상인, '차범근 축구 교실'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 무엇보다 먼저, 당시에는 이름 조차 생소한 유소년 축구 클럽을 창단하여 이를 뿌리내린 차범근 감독. 그의 철학을 직접 들어보자.
(*차범근 감독과의 인터뷰는 K-리그가 진행 중인 관계로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아울러 인터뷰에 힘써 주신 경인일보 신창윤 기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창단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차범근 감독 : 저는 78년 당시 보다 좋은 축구를 배우기 위해 해외로 진출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 일본에서 벌어진 기린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바로 푸른 잔디 위에서 50여 명의 일본 꼬마들이 축구공을 차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이 정말 ‘타도 한국’을 목표로 30년 후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해에 독일에 진출하였고 ‘선진 축구를 배워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이바지 하겠다’는 약속을 팬들과 하였습니다. 때문에 독일땅를 밟은 이후부터 늘 그 약속을 가슴에 새기며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 유소년 축구현장을 직접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막내도 그곳 축구교실에 입학시키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훈련장에 나가서 코치들이 지도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지도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운영목표는 무엇입니까? (차범근 축구교실은 어린이 교육과 축구 영재 발굴 이라는 목표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계신가요. 혹은 다른 목표가 있으신지요. ‘차범근 축구교실을 수료한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 축구가 늘 받는 비판인 “한국 축구는 문전처리가 미숙하다”, “한국 축구는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 는 이야기는 제가 선수 시절부터 들어왔고 축구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과연 축구 선진국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늘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고 유럽 축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10년간 활동하면서 제가 찾은 대답은 바로 기본기와 기술 그리고 볼에 대한 감각 이 세 가지의 근본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가급적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한국에 와서 유소년 축구를 해야 한다, 기본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저의 철학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직접 실천하기 위해 축구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 축구교실은 결코 엘리트 육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과도한 훈련은 오히려 어린 선수들이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건강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을 갖춘 조화로운 인간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축구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축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차범근 축구교실 설립당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창단 당시 한국유소년축구(클럽축구)의 현황을 알고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축구교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유소년 축구에 대해 설명을 해도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의 어려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운동장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부분들에 난제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그 어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회사들이 모두 외면할 때 도와 준 곳은 바로 외국계 회사였습니다. 아디다스와 코카콜라 그리고 바이엘 코리아가 큰 도움을 줬고 운동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은평구청장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이름 없이 도와주신 분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으셨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도움과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차범근 축구교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은퇴 후, 축구교실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우리 코치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절대 구타를 하지 마라, 어린이들에게 고운 말을 사용하라, 어떠한 경우라도 돈을 받지 마라, 정규 수업시간 외에 과외를 하지 마라, 그리고 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축구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축구교실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양적인 확대에 앞서 사명감을 가지고 축구를 배우는 어린이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점들을 지켜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축구교실이 학원 축구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차범근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청사진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클럽축구가 학원축구를 대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 과정이 진행되었으면 한다는 구체적인 안을 알고 싶습니다. )

저는 우리 축구교실이 그 가능성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용산초등학교-용강중학교-여의도고등학교-수원대학교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이 공부와 축구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토너먼트가 아닌 주말리그를 통해 꾸준히 경기를 출전하면서 기량을 향상하고 있습니다. 클럽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제게 있어 축구교실은 제가 한국 축구에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 그 자체인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학원축구가 모두 클럽 시스템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학원축구와 클럽축구는 함께 공생하면서 발전을 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저변을 넓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현재의 학원축구와 클럽축구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고 봅니다. 물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한국 축구가 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저희 축구교실을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는 바이엘 코리아의 로고가 앞가슴에 새겨져 있는 파란색의 유니폼입니다. 바이엘 코리아가 지원하고 있는 금액은 전액 우리 엘리트 축구교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또한 축구교실의 용품 후원사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는 아디디스의 로고가 유니폼 가슴에 들어가 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날아라! 슛돌이" 1기 때부터 출연하여 일약 유소년클럽의 명문으로 주목받았는데요. 차범근 축구클럽의 역사에 비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한 이전에 비해서 뭔가가 위상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그런 사례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방송에 출연하면서 축구교실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많이 이기니까 사람들이 저희 축구교실을 강한 팀으로 생각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방송으로 인해 축구교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날아라! 슛돌이" 방송을 보면 미취학 아이들이 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모 감독의 말에 의하면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고 싶으나 막상 감독이 되어 하게 되면 승부욕이 발동된다고 그러더군요. 학부모들의 압력도 있을 것 같은데, 어린이 축구에도 승부를 강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훈련은 승부가 없지만 경기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승부가 없으면 경기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나선 선수는 승부욕이 있어야 하고 그 승부욕이 기량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한 후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경기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한 훈련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스포츠정신과 페어플레이, 정정당당한 승부정신을 함께 가르친다면 올바른 승부욕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날아라! 슛돌이" 선수 지망자들과 시청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부모님께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너무 어려서부터 한 쪽 방향으로만 제한한다면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선수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천천히 만들어집니다. 특히 더 많은 아이들이 선수의 길에 다다르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다른 스포츠도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축구만 너무 많이 시키면 아이가 자칫 축구에 대한 흥미를 일찍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도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천천히 인내력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본다면 언젠가 소질 있는 아이는 그 소질이 보여줄 것입니다. 또한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에게는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이라는 선물이 인생에 생긴 것이니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들과 어린이 여러분 모두가 늘 즐겁게 축구를 즐기고 축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식 잡지도 아닌, 슛돌이 팬진(Fanzine)일 뿐인, 슛돌이 M과의 인터뷰에 장시간 정성스레 (심지어 맞춤법조차도 틀린 것이 없었다!) 응해 준 차범근 감독님께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떠한 말로 이 깊은 고마움과 감동을 전할 수 있을는지... 역시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며, K-리그가 끝난 후, 우리 슛돌이들과 함께 뵈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슛돌이M | 앨리, 장훈일 / 사진=수원삼성 블루윙즈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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