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아 매니저와의 첫 대면을 기억하시나요? 슛돌이 5기 오디션 당시 많은 아이들 앞에서 수줍게 '올챙이 송' 안무를 했었지요. 단아하고 예쁜 모습에 매니저 역할을 잘 하실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왔었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하고 아껴주는 모습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매니저로서 손색없는 모습 이었습니다. 의외로 검도 2단으로 단련된 몸에, 축구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수원삼성 팬이라는 최승아 매니저! 최승아 매니저에게 들어보는 6개월간 슛돌이와 함께 한 이야기들, 지금 시작합니다!


슛돌이 5기 매니저가 되기 전부터 슛돌이 프로그램을 알고 계셨나요?

그럼요. 특히 1기는 공중파에서 했었잖아요. 그래서 쉽게 챙겨 볼 수 있었구요. 그러다가 채널을 돌리던 중 우연히 '3기도 생겼구나' 하고 3기도 봤었어요. 아이들이 정말 귀엽잖아요.


슛돌이 5기 매니저로 캐스팅 되었을 때 어땠나요?

그 때 생각하니까 짠하네요. 아이들도 원래 좋아하고, 그전에 슛돌이 방송도 보고 그랬으니까요. 정말 좋았어요.

2009년 3월, 슛돌이 5기 프로필 촬영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인가요?

유비랑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BIG 3라고 해서 유상철 축구교실, 최진철 축구교실, 서정원 축구교실과 경기를 했는데, 유비와의 경기에서는 승부차기 까지 가서 아쉽게 졌잖아요.


당시 유상철 감독의 입장이 난처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제가 아이들 시켜서 x침을 좀 놨어요. '가서 바지 좀 내리고 와라' 하기도 하고. (웃음)


아이들이다 보니까 힘들었던 경우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아이들 통솔하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체력도 정말 좋아서, 계속 뛰고 와는데도 쉬는 시간에 가만히 있질 않아요. 아이들 체력을 못 따라가겠더라구요. 그리고 대부분이 야외 촬영이다보니, 추위며 더위며.. 날씨가 힘들게 했죠.

하루에 촬영 시간이 어떻게 되나요?

보통 오전 9시나 9시 30분에 모여서, 오후 4시 정도. 일찍 끝나면 1시에 끝날 때도 있구요. 제일 늦게 끝났던 적은 저녁 8시가 넘어서 끝난 적도 있어요.


제일 말 잘 듣는 슛돌이를 뽑는다면?

경빈이랑 지훈이가 제일 잘 들었던 것 같아요. 경빈이는 처음 말고는 코치 팀, 매니저 팀 나누면 항상 저한테 왔어요. 헤어질 때도 제가 우니까 막 같이 울더라구요. 지훈이는 말도 잘 듣고, 예의도 참 발라요.

그렇다면 제일 말 안 들었던 슛돌이는 누구인가요?


주헌이랑.. 의현이랑.. 다들 개구쟁이에요. 아.. 민규! 민규가 '우축교'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똘망똘망하고 말도 잘 들었는데, 우축교 (방송 상에서 우승민 축구교실) 들어가더니 애가 바뀌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승민 오빠 (우승민 코치) 한테 뭐라고 했다니까요. 과자에 약 타는 거 아니냐고.. (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슛돌이를 고른다면?


모든 아이들이 기억에 남지만, 재훈이가 촬영만 시작하면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어서 기억에 남네요. 다른 아이들이 장난칠 때 보호도 해주고.. 참, 용진이도 그런게 있어요. 용진이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용진이가 특히 여자한테 낯을 많이 가린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친해지니까 정말 잘 해주더라구요. 햇볓이 내리쬐면 부채를 들고와서 저 주기도 하구요. 다른 아이들이 부채 못 빼앗아 가게 보호도 해주고요.

나중에 커서 '여자를 여럿 울릴 것 같은' 슛돌이는?


음.. 지훈이..? 지훈이가 성격이나 행동이나 하는 말들이 과묵하고 그래요. 어떨 때는 정말 무뚝뚝해서, 그 조그만 아이가 절 무안하게 하는거에요. 그러고서는 또 어떨 때는, '매니저 누나~♥' 이러면서 와 가지고, 포옹도 하고 그러거든요. 애가 벌써 강약을 조절할 줄 알아요. 알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웃음)


가장 짓궂게 장난하는 슛돌이는 누구인가요?


의현이랑 용진이요. x침을 놓는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고 신속하게 하는지~ 그런데 저만 당한게 아니라, 감독님이 제일 많이 당하셨어요. 그 중에 반은 제가 시킨거지만요. (웃음)

제일 눈물이 많은 슛돌이는?


형균이, 지훈이요. 형균이는 코가 빨개지면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막 많이 울었어요. (웃음) 지훈이는 안 보이는데서 부모님 품에서 울고 있는데 어떻게 타이밍이 맞는지 항상 저한테 걸려요.


슛돌이 5기 마지막 촬영할 때 많이 우시던데.. 정말 아쉬우셨겠어요.

제가 자부할 수 있는게 정말 슛돌이들을 내 아이처럼 해줬어요. 혼낼 땐 혼내주고, 챙길 땐 다 챙겨주고.. 그래서 많이 울었죠.. 할 때는 말이 너무 안 들어서 '내 자식 같았으면 이 것들..!' 이랬는데.. 막상 끝이 나니까 말 안들어도 좋으니까 좀 더 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아쉬웠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본업이 연기자이니까요. 드라마나 영화 좋은 작품이 있으면 열심히 연기할 거구요. 준비 중인 작품도 있어요.
슛돌이 5기가 끝났지만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슛돌이 서포터즈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려요.

6개월간 함께 한 슛돌이들과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최승아 매니저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앞으로 훌륭한 작품에서 명품 연기를 펼치는 여 배우로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슛돌이 M | 앨리, 임영휘, 류승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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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포츠 중계와 스포츠 프로그램의 간판 아나운서인 최승돈 아나운서, 하지만 우리에게는 슛돌이 캐스터(아나운서)로 더욱 익숙하다. 2005년 10월 차범근 축구교실과의 창단 첫 경기부터 슛돌이 3기의 마지막 경기인 코차이나 팀과의 경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슛돌이들이 울 때 함께 울고, 슛돌이들이 웃을 때 함께 웃으며 슛돌이와 함께 한 그를 슛돌이 4기 출범 이후 볼 수 없어 많은 팬들로 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병진 해설위원과의 환상 콤비를 자랑하며, 재밌고 흥미진진한 중계를 통해 슛돌이의 재미를 한층 높여준 그를 슛돌이M에서 만나보았다. 그리고 전문 방송인인 그를 통해 <날아라 슛돌이> 프로그램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안녕하세요. 슛돌이M 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최승돈 아나운서 :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최승돈 아나운서를 ‘슛돌이 아나운서’로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최승돈입니다. KBS에 아나운서로 1994년도에 입사하였습니다.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스포츠, 교양,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진행을 합니다. 그동안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각종 종합 스포츠 대회 중계방송 메인 앵커를 하였습니다. 현재 스포츠 중계로 축구, 핸드볼, 하키, 펜싱, 탁구, 양궁, 체조, 마라톤 등의 여러 스포츠를 중계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난달에 이상윤 감독님과 인터뷰를 가졌는데요. 인터뷰에서 최규호 어린이가 A반(실력반 중 제일 잘하는 반)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최규호 어린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

규호는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어요. 이상윤 코치님이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저는 규호를 선수로 키울 생각으로 가르치지는 않아요. 축구를 즐기면서 축구와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다만 나중에 규호가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때 가서의 일이지요.


그렇다면 최승돈 아나운서께서는 평소에 최규호 어린이와 주말에 축구도 즐겨 하시나요?

아니요. 그렇지 못해요. 제가 시간을 내어 따로 아들과 축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거든요. 규호도 규호 나름대로 바쁘고, 저도 저 나름대로 바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축구를 하러 가지는 못합니다. 집안에서 장판에 가끔 공을 차고 하는 정도랍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슛돌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승돈 아나운서께서 <날아라 슛돌이> 프로그램에 어떻게 참여하시게 되신 것인지, 그 과정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그리고 최승돈 아나운서라면 워낙 스포츠 중계로 유명하신 분이신데, 오락 프로그램이 생소하지는 않으셨나요?

생소하거나 그런 것은 없었어요. 최재형PD와는 이전(1998년)에 KBS 2TV<이색도전 별난 대결>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병아리 월드컵>을 함께 하였어요. 그 당시에 제가 전체 MC를 맡았었고, 프로그램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색도전 별난 대결>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죠.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재형PD도 경력을 쌓은 PD가 되었고, 2006년에 <날아라 슛돌이>라는 프로그램을 구상하였지요. 이전에 그러한 인연으로 제가 <날아라 슛돌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날아라 슛돌이>에 참여하시고 처음 분위기는 어떠하였나요? 슛돌이가 처음에는 연패를 하는 등 성적이 안 좋았잖아요.

분위기는 좋았답니다. 보시는 입장에서는 안 좋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슛돌이가 연패할 때의 분위기가 이길 때 보다 더 좋았어요. 연승을 할 때에는 오히려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중계를 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분들께 어떠한 다른 재미를 드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도 하게 되었고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연승을 하는 것에 대해 부담 갖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슛돌이 1기가 계속해서 연패를 할 때 답답한 마음을 가지는 부분도 있었겠습니다만, 연패를 할 때도 재밌고 즐겁게 잘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3기의 연승도 좋았지만, 오히려 1기가 연패할 때의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기 때는 오락적인 요소가 많다는 부분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날아라 슛돌이>가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오락적인 요소가 많고, 스포츠 경기적인 요소가 적은 것에 대해서 건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선발을 하는데 있어서도 축구 그 자체로만 선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건의를 하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지는 것은 지는 것대로 잘 이루어지고, 이기는 것도 이기는 것대로 잘 이루어졌어요. 그리고 PD의 개인적인 능력도 탁월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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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날아라 슛돌이>가 많은 인기를 얻은 성공요인이 무엇일까요?

우선 흥행 공식에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스포츠’라는 소재의 결합이 갖는 특성이 흥행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프로그램을 위해서 상당히 많은 노력이 기울여졌습니다.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투입량도 참 많았습니다. 8년 전 <병아리 월드컵>을 진행 할 때는 제가 심판과 진행 등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해야 했었어요. 반면 날아라 슛돌이는 예산도 많았고, 또한 주요 시간에 배치된 것도 하나의 요인이겠지요. 또한 2006년 월드컵을 앞 둔 특수한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후원도 있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진실성이 성공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포츠가 갖고 있는 힘이지요.


<날아라 슛돌이>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잖아요? 그래서 오락적인 요소와 스포츠 요소가 결합되어있는데요. 오락적인 요소와 스포츠 요소 둘 중 어느 쪽에 중심을 두는 것이 좋을까요?

어느 쪽에 편을 들을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락성도 존중되어야 하고, 스포츠로서의 측면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하여서 캐스터로서 소임을 배제하면 안 되는 것이고, 또한 오락성을 배제하였다면 슛돌이라는 프로그램에 도움 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요소를 다 고려하여서 방송을 하였습니다.


<날아라 슛돌이> 방송의 성공으로 유소년 축구 환경이 많이 변화한 것 같아요. 최승돈 아나운서가 생각하시기 에는 <날아라 슛돌이> 방송이 유소년 축구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나요?

슛돌이가 한 일은 ‘획기적인 일’이고 ‘소명을 가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날아라 슛돌이> 프로그램이 실현되기 전에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주변 의견이 별로 탐탁지 않았어요. 프로그램을 사람들이 많이 볼지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와 달리 슛돌이가 잘 되었지요. 기존의 스포츠의 구조는 엘리트 스포츠, 학원 스포츠 구조였어요. 이전의 선수들은 엘리트 선수로서 훈련·조련되는 과정에서 축구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슛돌이 이후로는 유소년 축구라는 것이 일상에서 어린 아이들이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일이 되었어요. 또한, 사람들이 애국심과 축구 사랑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와 달리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돈과 시간을 들여 배울만한 것으로 판단하도록 바꾼 것은 슛돌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것은 더욱 강력하게 트렌드를 형성하였다면 우리나라 스포츠를 더욱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슛돌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잦아 들어오는데서 오는 아쉬움 또한 있어요. 하지만 계속 지속되는 훌륭한 스포츠 프로그램으로서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유소년 축구클럽도 많이 늘고, 축구를 하는 어린 아이들도 많아 진 것은 역시 슛돌이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날아라 슛돌이가 KBS N으로 옮긴 이후에도 KBS 아나운서가 슛돌이 중계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두 회사가 협력하는 관계라든지요?

사실 2기 때 방송사를 옮기게 되면서 그때부터 슛돌이 중계를 못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제가 KBS N의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함께 가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KBS N의 아나운서 숫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스포츠 중계도 KBS의 아나운서가 일정 부분 계약에 의하여 하기도 해요. 그것에 준하여 저도 슛돌이 중계를 하는 걸로 했죠. 그래서 3기까지 제가 슛돌이를 중계할 수 있었습니다.


1기부터 3기까지 함께 해 오신 최승돈 아나운서를 <날아라 슛돌이> 4기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요. 어떠한 이유인가요?

아나운서실에서 아나운서들에게 일정을 정해줍니다. 저는 이번에도 제가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 이름이 없더군요. 대신 이번 슛돌이 4기는 성세정 선배님께서 하는 것으로 KBS에서 배정이 된 것이죠.


슛돌이와 오랜 시간 함께 하셨는데, 많이 아쉬웠을 것 같습니다.

슛돌이는 그 동안 계속 해 오면서 좋아하던 일이고 애착이 가는 일이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슛돌이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해주세요.

슛돌이들 모두 축구를 통해서 맑고 밝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합니다.


최승돈 아나운서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주셔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역시 슛돌이와 함께 오랜 시간 함께 한 분이셨기에 슛돌이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 수 있었고, 슛돌이에 대한 최승돈 아나운서의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슛돌이 4기에서는 그의 중계를 볼 수 없지만, 앞으로도 더욱 좋은 방송으로 그를 만나길 기대하면서 다시 한 번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슛돌이M | 장훈일,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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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이름 석 자를 써놓고, 깜박거리는 커서를 둔 채,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이름. 그의 이름 앞에 경외심을 가지지 않을 그 누가 있을까. 분데스리가의 영웅, 한국 축구의 신화, 세계 축구계의 축복이었던 존재. 이러한 수식어로도 그를 나타내기에는 한없이 부족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의 MVP 수상, UEFA컵 2회 우승의 주역, 세계 축구선수 11에 선정, 분데스리가 연봉 랭킹 3위, 독일의 귀화 추진 등의 그의 커리어가 보여주는 위대함은 현재의 박지성의 위대함, 그 이상일 것이 분명하다.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분데스리가로 날아가기 전, 그는 "반드시 돌아와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몸 바치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일의 귀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선진 축구와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차이는 유소년 축구에서부터의 차이였고, 이러한 그의 인식은 현 유소년 축구 클럽의 최고라 일컬어지는, 'FC 슛돌이'의 목표이자 이상인, '차범근 축구 교실'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축구의 발전을 위해, 그 무엇보다 먼저, 당시에는 이름 조차 생소한 유소년 축구 클럽을 창단하여 이를 뿌리내린 차범근 감독. 그의 철학을 직접 들어보자.
(*차범근 감독과의 인터뷰는 K-리그가 진행 중인 관계로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아울러 인터뷰에 힘써 주신 경인일보 신창윤 기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창단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차범근 감독 : 저는 78년 당시 보다 좋은 축구를 배우기 위해 해외로 진출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 일본에서 벌어진 기린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바로 푸른 잔디 위에서 50여 명의 일본 꼬마들이 축구공을 차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본이 정말 ‘타도 한국’을 목표로 30년 후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해에 독일에 진출하였고 ‘선진 축구를 배워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이바지 하겠다’는 약속을 팬들과 하였습니다. 때문에 독일땅를 밟은 이후부터 늘 그 약속을 가슴에 새기며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 유소년 축구현장을 직접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막내도 그곳 축구교실에 입학시키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훈련장에 나가서 코치들이 지도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지도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운영목표는 무엇입니까? (차범근 축구교실은 어린이 교육과 축구 영재 발굴 이라는 목표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두고 계신가요. 혹은 다른 목표가 있으신지요. ‘차범근 축구교실을 수료한 사람은 이러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는 바람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 축구가 늘 받는 비판인 “한국 축구는 문전처리가 미숙하다”, “한국 축구는 골 결정력이 떨어진다” 는 이야기는 제가 선수 시절부터 들어왔고 축구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과연 축구 선진국들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늘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고 유럽 축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10년간 활동하면서 제가 찾은 대답은 바로 기본기와 기술 그리고 볼에 대한 감각 이 세 가지의 근본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가급적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한국에 와서 유소년 축구를 해야 한다, 기본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저의 철학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말보다는 직접 실천하기 위해 축구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희 축구교실은 결코 엘리트 육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과도한 훈련은 오히려 어린 선수들이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린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건강한 체력과 건강한 정신을 갖춘 조화로운 인간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기 때문에 축구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축구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차범근 축구교실 설립당시 어려웠던 점이 있었나요? 창단 당시 한국유소년축구(클럽축구)의 현황을 알고 싶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축구교실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유소년 축구에 대해 설명을 해도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의 어려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운동장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모든 부분들에 난제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기에 그 어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 회사들이 모두 외면할 때 도와 준 곳은 바로 외국계 회사였습니다. 아디다스와 코카콜라 그리고 바이엘 코리아가 큰 도움을 줬고 운동장과 관련해서는 당시 은평구청장님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그 외에도 이름 없이 도와주신 분들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으셨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도움과 믿음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차범근 축구교실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은퇴 후, 축구교실을 설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우리 코치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합니다. 절대 구타를 하지 마라, 어린이들에게 고운 말을 사용하라, 어떠한 경우라도 돈을 받지 마라, 정규 수업시간 외에 과외를 하지 마라, 그리고 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축구의 저변을 확대한다는 점에서 축구교실이 늘어나는 점은 긍정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양적인 확대에 앞서 사명감을 가지고 축구를 배우는 어린이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점들을 지켜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 축구교실이 학원 축구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차범근 감독님이 가지고 계신 청사진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클럽축구가 학원축구를 대체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 과정이 진행되었으면 한다는 구체적인 안을 알고 싶습니다. )

저는 우리 축구교실이 그 가능성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용산초등학교-용강중학교-여의도고등학교-수원대학교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이 공부와 축구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또한 토너먼트가 아닌 주말리그를 통해 꾸준히 경기를 출전하면서 기량을 향상하고 있습니다. 클럽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직접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입니다. 제게 있어 축구교실은 제가 한국 축구에 제시하고 싶은 메시지 그 자체인 셈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학원축구가 모두 클럽 시스템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학원축구와 클럽축구는 함께 공생하면서 발전을 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다 많은 아이들이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저변을 넓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현재의 학원축구와 클럽축구가 이바지 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르다고 봅니다. 물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한국 축구가 보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방향으로 자연스러운 조정 과정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의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저희 축구교실을 여러모로 도와주고 있는 바이엘 코리아의 로고가 앞가슴에 새겨져 있는 파란색의 유니폼입니다. 바이엘 코리아가 지원하고 있는 금액은 전액 우리 엘리트 축구교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또한 축구교실의 용품 후원사로 여러 도움을 주고 있는 아디디스의 로고가 유니폼 가슴에 들어가 있습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날아라! 슛돌이" 1기 때부터 출연하여 일약 유소년클럽의 명문으로 주목받았는데요. 차범근 축구클럽의 역사에 비하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한 이전에 비해서 뭔가가 위상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그런 사례가 있으면 이야기해 주세요.

방송에 출연하면서 축구교실의 인지도가 많이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경기에서 많이 이기니까 사람들이 저희 축구교실을 강한 팀으로 생각하시게 된 것 같습니다. 방송으로 인해 축구교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날아라! 슛돌이" 방송을 보면 미취학 아이들이 하는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승부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모 감독의 말에 의하면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고 싶으나 막상 감독이 되어 하게 되면 승부욕이 발동된다고 그러더군요. 학부모들의 압력도 있을 것 같은데, 어린이 축구에도 승부를 강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훈련은 승부가 없지만 경기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승부가 없으면 경기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기에 나선 선수는 승부욕이 있어야 하고 그 승부욕이 기량 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승부에 임한 후 그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면 경기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고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한 훈련의 연장이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스포츠정신과 페어플레이, 정정당당한 승부정신을 함께 가르친다면 올바른 승부욕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날아라! 슛돌이" 선수 지망자들과 시청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학부모님께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 가능성을 너무 어려서부터 한 쪽 방향으로만 제한한다면 교육적으로 좋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선수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천천히 만들어집니다. 특히 더 많은 아이들이 선수의 길에 다다르지 못하고 중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많은 것을 보게 하고 다른 스포츠도 경험하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축구만 너무 많이 시키면 아이가 자칫 축구에 대한 흥미를 일찍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도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즐겁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천천히 인내력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본다면 언젠가 소질 있는 아이는 그 소질이 보여줄 것입니다. 또한 설령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아이에게는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이라는 선물이 인생에 생긴 것이니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부모님들과 어린이 여러분 모두가 늘 즐겁게 축구를 즐기고 축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식 잡지도 아닌, 슛돌이 팬진(Fanzine)일 뿐인, 슛돌이 M과의 인터뷰에 장시간 정성스레 (심지어 맞춤법조차도 틀린 것이 없었다!) 응해 준 차범근 감독님께 마음 속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떠한 말로 이 깊은 고마움과 감동을 전할 수 있을는지... 역시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며, K-리그가 끝난 후, 우리 슛돌이들과 함께 뵈었으면 하는 작은 희망을 가져 본다. 


[슛돌이M | 앨리, 장훈일 / 사진=수원삼성 블루윙즈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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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슛돌이'를 만드는 사람들.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경기를 만들고 중계진이 양념을 친다면, 경기가 본래의 제 맛을 내게 하는 이는 바로 심판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심판','날아라 슛돌이' 1기, 2기, 3기 모두를 함께 해온 김미옥 심판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슛돌이 M' 마감을 하루 앞둔 상태에서 이루어진 귀중한 만남이라 마음은 무척 설레었다. "운동하는 사람치고 부정적인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다. 오전에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를 하시고 왔다는 김미옥 심판은 건강하게 밝은 웃음으로 슛돌이 M 운영진을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슛돌이 M’입니다. 생소하실 거 같은데, 슛돌이 서포터즈 카페에서 내는 잡지거든요. 1호가 나왔는데 혹시 보셨나요?

김미옥 심판 : 아유, 아직 못 봤네요. 제가 컴퓨터, 인터넷을 잘 안하는 편이라 오늘 가서 당장 봐야겠어요. (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국제 심판 자격증을 땄다고 들었습니다.

중, 고등부 축구 심판 보고 본업에 충실했지요. 아저씨들하고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도 하고.. 잘 지냈습니다. 국제 심판 자격증은 작년 초에 이미 시험 봐서 통과된 거구요.


축구 선수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또 여성이 축구 심판을 한다는 것도 특이한 일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축구인의 길에 들어서시게 된 거에요?

아, 저 같은 경우 참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시작했는데요. 원래는 생각이 없었죠. 제가 원래 운동을 잘 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부르시더라구요. 무슨 일인가 해서 갔더니 서울 현대고에서 이번에 여자 축구부를 창설한다고 생각있는 학생들 오디션 보러 오라고 공문이 온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추천을 하겠다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웬 축구?’하면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 농구를 할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생각 해 보니 좋을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이 찬성을 해 주셨죠. 아버님은 ‘여자가 무슨 축구냐?’하면서 반대를 하셨는데 결국 밀어 붙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셨군요. 그런데 축구 선수에서 또 축구 심판으로 변신하셨잖아요? 어떤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네, 처음 현대고에서 축구를 시작 했을 때, 감독 선생님이 참 좋으셨어요. “내가 축구를 하면서 많이 맞았다. 너희들에게는 학원 스포츠 폭력 같은 거 하지 않겠다.” 저희들에게 손 한 번 안대셨어요. 그러기가 참 힘들거든요. 학원축구 문화에서는.. 그래서 고등학교 때, 편하게 축구를 했는데 대학교 때에는 좀 힘들었어요. 선배도 있었고 문화가 많이 달라서 힘들었죠. 그래서 2학년 때 축구를 그만 두었어요. 그 때 그만 두면서 결심한 게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축구의 ‘축’자도 돌아보지 말자는 거랑 또 하나는 절대로 달리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왜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바뀌면 사람들 막 뛰어 가잖아요. 저는 뛰지도 않았아요. 달리는 것에 하도 물려서... 그랬는데 이제 그 때 ‘앞으로는 자격증 시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준비하고 그런 때였죠. 그러다가 우연히 모교 (고등학교)에 찾아 갔어요. 고등학교 때 감독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다른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때 그 선생님이 ‘심판 자격증’을 따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 주셨어요. 그 때 제 머리 속에 ‘아, 자격증!’ 이게 강하게 와 닿았지요.^^ 그래서 3급 자격증부터 준비해서 지금 국제 심판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습니다.


축구와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편분도 심판이시고.. ^^

아, 그런데 제가 심판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게 축구 규정이 선수 시절 알았던 것과 심판 수업 들으면서 배우는 거랑 다른 거에요. 오프사이드가 가장 민감한 거라서 오프사이드에 대한 수업이 60%정도 차지하고 다른 규정, 파울의 개념 등이 40%인데 선수 시절 알던 것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러면 선수들이 항의하는 게 좀 이해가 되는데요?

그렇죠. 공격수 위치에 있느냐, 수비수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끼는 게 심판 판정인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규정에 맞게 해야죠.


네, 그러면 이제 슛돌이 얘기로 들어가서 어떻게 슛돌이 심판으로 오시게 된 건가요?

아, 이것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죠. 원래 제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게 ‘최수종의 골든볼’ 때 였어요. 방송이니까 좀 부드럽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주심을 여자 심판으로 하자고 했었나봐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대한축구협회로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그 때 전국 대회 배정이 끝나고 남아 있는 여자 심판이 저하고 어떤 분하고 둘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다른 여자 심판은 키가 저보다 작고 너무 여성스러워서 남자들한테 묻히니까 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키 때문에 된 거에요 .^^ 그랬는데 골든볼 끝나고 몇 년 후에 슛돌이가 시작돼면서 또 대한축구협회에 심판 협조 공문이 왔습니다. 방송을 해봤던 제가 여러 모로 좋다고 판단되었는지 제가 하게 되었죠.


슛돌이를 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 볼 것 같아요.

(웃음) 그렇죠. 슛돌이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집 앞에 있는 슈퍼에 뭐 좀 사러 가려고 슬리퍼 질질 끌고 머리며 옷이며 그냥 편한 대로 하고 갔는데, 중학교 남학생 세 명이 '슛돌이 심판' 아니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제가 그 몰골이었는데 같이 사진까지 찍자고 하길래, “얘들아 오늘은 날이 아니다.” 하면서 보냈죠. ^^


난감하셨겠어요. 슛돌이에 출연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요?

잃은 건 별로 없어요. 주위에서 국제 심판이 유아들 심판 보면 뭐 다른 경기 심판으로 뛸 때 지장있지 않겠냐는 우려를 해 주시는데 별로 큰 문제는 없어요. 국제 심판으로서 더 큰 경기에 배정받고 싶은 욕심은 물론 있지만 슛돌이 영향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오히려 심판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고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있으세요. 그리고 슛돌이를 하면서 느낀 건데, 정말 슛돌이가 한국 축구 문화에 크게 일조를 했다는 거에요.


어떤 점에서 슛돌이가 한국 축구 문화에 일조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슛돌이 이전에는 미취학 아동이 축구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초등학생이나 되서야 방과 후 교육 같은 거라든가 학원축구가 있으니까 생소하지 않았는데 미취학 아동까지는 생각을 못했었죠. 지금은 미취학 아동의 축구 클럽이 얼마나 많아요. 1기 2기 3기 거치면서 유소년 클럽이 커 가는 거 보면 정말 슛돌이가 학부모들이나 축구인들의 인식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았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슛돌이 M : 맞아요. 정말 슛돌이가 이 나라의 축구 시스템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거의 새로운 산업 영역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소년 클럽 취재 가면 슛돌이 때문에 회원이 많이 늘고 슛돌이 덕을 많이 보았다고 해요. 그래서 슛돌이 폐지 같은 우려들이 답답한 거죠. 대한 축구 협회에서 지원 안하나 이런 항의도 있었구요. (아,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 다시 슛돌이 얘기로 들어가 볼게요.)


아무래도 유아들이라 심판을 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유아들의 축구에서 심판을 볼 때 특히 더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많이 어렵죠. 일단 규칙들을 잘 모르니까 1기 할 때는 정말 스로인이나 파울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했어요. 그래서 이제 슛돌이 애들은 괜찮은데, 문제는 상대팀이 항상 바뀌니까 항상 제가 가르칠 수가 없어서 백패스 같은 규정은 제작진과 협의해서 없앴죠.
 

유아들 경기에서도 분위기가 과열되는 경우에는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가 심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시고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정말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언제나 50 대 50 으로 심판을 봤어요. 슛돌이 애들이라고 더 봐주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코치 분들이 항의를 심하게 하는 경우에는 다 축구하는 사람들이고 축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인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해요. 축구인들이 승부욕이 정말 많은데 그래서 그렇다고 이해하죠. 나중에 경기 끝나고 얘기하면 풀리기도 하고... 선수들이 항의하는 경우에는 경기 중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 선수들이 이해를 하는데, 정말 힘든 건 관중들이 항의할 때죠. 지난 2기 양구 대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슛돌이와 상대팀 경기에서 아마 상대팀 학부모였는지 계속 “6대 7로 경기하냐? 심판 좀 똑바로 봐!” 이런 항의를 하시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관중이시니까 제가 하나 하나 설명할 수도 없잖아요.


슛돌이 1기, 2기, 3기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방송에 나오지 못한 에피소드나 재미있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1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기 승준이 경우는 기분파라서 기분에 따라 잘 막기도 하고 못 막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정말 기분이 업되어 있는 거에요. 그 날 선방을 많이 했죠. 그렇게 웃는 모습 보니까 정말 저도 덩달아서 기쁘더라구요. 아, 또 있어요. 최승돈 아나운서의 아들 규호가 차범근 축구교실 팀으로 출전하던 때였어요. 최승돈 아나운서가 저를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잘 봐주세요~”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뭐 해주실 건데요?”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외진 곳으로 끌려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웃음)


최승돈 아나운서도 농담을 잘하시네요? 최승돈 아나운서나 이병진 씨는 어때요?

두 분은 정말 슛돌이에 대한 고민도 많으시고 애정도 많으시죠. 소탈하시고 정말 재밌으신 분들이에요. 그리고 아무래도 방송에서 슛돌이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하셔야 하니까 시청률이나 그런 면에서 고민이 많으셨어요. 슛돌이가 방송 프로그램이니까 재미를 주어야 하잖아요? 3기 때는 애들이 너무 잘하니까 상대팀하고 점수차가 많이 벌어져서 방송에 재미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고민이 많았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번 4기는 3기와는 조금 다르게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게 팀이 꾸려졌으면 하네요.


1기, 2기, 3기 각각의 특징이 있다면요?

1기는 정말 축구에 있어서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 하나 가르치면서 했으니까요.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승리도 하고 팀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2기는 배워 나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고 3기는 정말 완성된 팀이라고 할 수 있죠. 너무 잘했으니까요. 1기 아이들은 저를 부를 때, '아줌마'라고 했어요. 민호만 '선생님', '심판님' 이렇게 불렀죠.(웃음)


'아줌마'라구요? 정말 재미있네요. 그럼 2기와 3기 아이들은 어떻게 불렀나요?

2기 아이들은 저한테 '저기요~' 이랬어요.(웃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한 명이 '저기요’ 이렇게 하니 애들이 다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그리고 3기는 '선생님', '심판님' 이렇게 불렀어요.


슛돌이 아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슛돌이는 누구인가요? 모두 기억에 남으시겠지만 특별히 콕 집어서 말씀해주세요.

음.. 성우하고 강인이요. 성우는 정말 굉장히 뿌듯한 경우에요. 1기 때는 정말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었거든요. 사람을 차는 건지 공을 차는 건지. (웃음) 그런데 이랬던 성우가 2기 때는 정말 달라졌어요. 리더가 된 거죠. 의젓해지고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고.. (슛돌이 M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런 거죠?) 그렇죠. 축구가 그래서 좋은 거 같아요. 아이들이 자기만 알다가 동료를 알게 되고 배려하게 되고 그러면서 리더십이나 책임감, 협동심 이런 걸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인이는 정말 신동이에요, 신동. 정말 잘 자라서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라죠.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강인이가 체계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슛돌이 카페 회원들 중 특히 여자 초등학생 팬들이 축구모임을 가지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이 회원들 중에는 축구를 하고 싶은데 여자라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구 선수나 축구 심판을 꿈꾸는 소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축구를 정말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의무감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축구가 좋아서 해야 해요. 그리고 축구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정말 원하는 것인지, 미래에 어떻게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 드리세요. 쉬운 말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 반대하시는 부모님들께도 한 말씀 해 주세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어요. 옛날에는 가난하고 공부 못 하는 애들이 하는 것이 축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돈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아야 축구를 할 수 있어요. 박지성, 이영표 선수와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구요. 그리고 선수를 하겠다는 문제 외에 그냥 체력을 기르는 차원에서도 축구가 좋아요. 요즘 아이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또 여가시간에는 컴퓨터만 하고..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비만인 아이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축구를 하면서 즐겁게 뛰어다니면 체력도 길러지고 집중력도 높아지고 좋습니다.


슛돌이 또래 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중요시해야할 게 무엇일까요?

기본기죠.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슛돌이 M : 기본기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정신적인 측면에서부터 패스, 드리블 등의 기본자세를 말하는 거에요. 강인이를 보면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어요.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개인기를 할 수 있고 개인기를 할 수 있으면 자신있게 축구를 할 수 있거든요. 무엇이든 기본을 잘 닦아놓아야 해요.


슛돌이 4기가 출범되었는데요. 심판으로 또 만날 수 있나요?

저는 얼마든지 하고 싶죠. 아마 슛돌이 4기에서 또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꼭 만나 뵙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축구는 정말 그냥 축구에요. 그냥 축구 그 자체로 보아야지 어떤 의도가 있거나 하지 않거든요. 축구를 즐기면서 보아 주셨으면 해요.


오랜 시간 인터뷰 해주시고 많은 이야기 들려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슛돌이M | 진경 / 사진=류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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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이런 날이 있다. 운수 좋은 날. K리그의 스타, 수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했으며 더군다나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유상철 감독과의 인터뷰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조차 의심했던 축구 스타 유상철 감독과의 인터뷰. 그러나 종합운동장 트랙에서 만난 유상철 감독은, 축구 스타로서의 모습이 아닌, 유소년 축구에의 고민과 슛돌이에의 애정으로 가득한 슛돌이 감독, 바로 그 모습이었다. 우리가 슛돌이 팬카페 운영진임을 밝히며 슛돌이 M에 대한 설명을 하니 흔쾌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우리의 기대치를 훌쩍 넘은 인터뷰의 성공은 유소년 축구, 그리고 슛돌이와의 관계를 ‘중독’이라 말하는 유상철 감독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여기 슛돌이와의 인연을 ‘중독’이라 말하는 그를 만나보자.


슛돌이 종영 후 어떻게 지냈나?

유상철 감독 (유상철 축구교실 감독) : 바빴다. 이번 대회준비도 준비지만 현재 유비 축구교실에서 중국 유소년 MBC 리토 국제 축구학교와 교류 중이다. 이 일로 중국 출장을 자주 다녀왔다. 1년간 교류하며 중국 축구교실에서 축구도 가르쳐 주고 선수들 교류도 하는 프로젝트다.


축구교실에서 직접 교육을 하나?

시간이 될 때마다 나가서 같이 공도 차고 직접 교육을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교육 프로그램인데 코치들과 함께 프로그램도 짜고 거의 사무실이나 교육현장에 나가서 지내고 있다. 유소년 축구는 일단 즐거워야 한다. 하면서 즐겁고 실력이 늘면서 즐거워해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승부에서의 승패는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축구를 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해야 실력도 늘고 창의성도 늘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는 너무 승부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이런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유소년 시절부터 노력해야 한다.


슛돌이 감독으로서만이 아닌 유소년 축구교실의 수장으로서 유소년 축구에 대한 그의 고민은 무척 깊고 많은 듯 했다. 운영진이 웹진 취재를 위해 찾은 이날의 축구대회에서도 일부 학부형들이나 코치들의 모습에서 승부에 집착하는 아쉬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즐기는 축구에 대한 고민은 사실 어제 오늘이 아니다. 학원 스포츠에서의 폭력문제와 서열문화를 겪은 그였기에 그리고 또 이제는 미래의 축구선수를 키워내는 감독이기에 유상철 감독에게 이러한 문제는 낭만에서 그치는 헛된 구호가 아니라 하루하루 부딪히는 현실의 문제 일 것이다. 훗날 우리 슛돌이들이 축구 선수로서 나아갈 때, 이러한 고민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슛돌이 감독으로 2기와 3기를 지도한 유상철 감독. 그에게 슛돌이는 어떤 의미일까? 인터뷰를 계속 이어가 보자.


슛돌이 3기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 그 경기, 지고 있다가 역전한 경기가 있었는데.. 음. 구리주니어하고의 경기하고 2기와 3기의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슛돌이 선수들 중 자신과 플레이가 가장 비슷한 선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성민이와 요셉이이다. 성민이는 개인기술이 좋고 파워도 있고 요셉이는 체력이 좋고 활동영역이 넓어서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국대로 활동하며 중원에서 지휘를 하기도 하고 스트라이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유상철 감독은 자신을 닮은 선수로 성민이와 요셉이를 꼽았다. 이유는 개인 기술이 좋고 체력도 좋고 활동영역이 넓어서! 음, 이것은 돌려 보면 사실 유상철 감독의 자화자찬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차범근 축구교실과의 경기는 언제나 슛돌이들에게나 팬들에게 도전정신을 갖게 하는데, 3기의 차범근 축구교실과의 두 번째 경기는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다. 그 경기 후, 이상윤 감독과의 분위기는 어색하지 않았나? 혹시 소주 한 잔 하면서 풀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나는 몰랐는데 방송으로 보니 내 표정이 지고 있을 때와 이기고 있을 때 다르더라. 이기고 있을 때는 웃고 있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는데 지고 있을 때는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는지...(웃음) 축구선수였고 감독이기 때문에 승부욕이 발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첫 경기를 항상 차범근 축구교실과 하는 줄 모르겠다. 제작진에게 물어보니 묵묵부답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처음에 애들 실력을 평가하고 충격을 주기 위해 그러는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런데 처음 경기에서 지면 애들이 일종의 공포심이라고 할까 두려움이라고 할까 그런 게 생겨버린다. 3기와의 두 번째 경기 때는 나도 좀 자신이 있었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윤 감독님도 긴장을 하셨는지 선발 애들로 데려왔다. 차범근 애들이 정말 잘 하는데 우리도 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들이 처음에 받았던 충격에 의해 경기 초반부터 많이 풀이 죽어 있었다. 그래서 그 경기에서 힘들었던 거 같다. 우리 처음에 연달아 차범근에 골 먹을 때 우리 애들이 긴장해서 그런 것도 있지 않았나. 이후 경기에는 꼭 이겨보고 싶다.


요즘 국가 대표 출신 감독이나 코치가 많지 않나. 홍명보 코치도 그렇고.. 성인 프로팀의 코치나 감독으로 K-리그에 돌아와 지휘할 생각은 없는지?

아직까지는 성인프로팀은 생각해본 적 없다. 물론 언젠가 코치나 감독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지도자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해야 가능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다. 사실 선수 생활 시 늘 긴장하고 있었는데 지도자가 되면 마찬가지 일 것 같다. 아직은 준비가 더 필요하다.


4기 출범 시 감독 하실 의향이 있는지?

하고는 싶지만 방송에서 불러 줘야 하는 게 아닌가.(웃음) 그런데 내 이미지가 슛돌이 방송 후 슛돌이 감독으로만 인식되는 문제가 있다. 이런 대회에서도 유상철이다 이러기 보다는 슛돌이 감독이다 하면서 알아본다. (웃음) 그런데 슛돌이는 좀 문제가 있다. 2기와 3기 이런 식으로 기수로 나뉘는데 매년 애들이 바뀌어서 교육에 있어 문제가 생긴다. 즉 교육의 연속성이 보장이 안 된다는 거다. 지금 애들로만 하면 좋을 텐데 기수가 바뀌면 또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와 항상 처음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힘들다. 사실 나는 슛돌이 프로그램 피디한테 속아서 처음 시작했다. (웃음) 원래 드림팀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영국에 다녀오고 나서 피디가 “아 정말 영국 보고 오니까 욕심이 생긴다. 정말 잘하는 애들을 뽑아서 잘 교육시켜서 영국원정에 데리고 나가 영국 유소년들과 다시 겨뤄보고 싶다.” 이러는 게 아닌가. 그래서 2기도 맡았다. 그리고 2기는 정말 잘하는 애들로 뽑고 그렇게 시작했다. 사실 1기는 조금 쇼 위주로 간 것 같은데 만일 쇼 위주로 갔다면 감독 안했을 것이다. 2기부터는 유소년 축구의 발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것이 어느새 공중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고 그래서 흐지부지 되었다. 사기당한 거다.(웃음) 그런데도 3기 맡은 거는 이게 정말 ‘중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중독’인데 유소년 축구가 그렇다. 정말 애들 너무 귀엽고 또 진지한 모습, 발전하는 모습 보면 많은 보람을 느낀다. 유소년 축구에 앞으로 더욱 열성을 다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슛돌이 감독은 꼭 유상철 감독이어야 한다고 방송국에 압력 좀 넣어라. 꼭 게시판에 글을 남기길 바란다. (웃음)


‘중독’. 슛돌이에 대한 그의 사랑은 팬들이 가진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감독으로서 슛돌이 개개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우리의 그것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인터뷰를 진행하며 유상철 감독에게 감동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슛돌이 2기와 3기를 맡으면서 TV프로그램으로서의 이벤트성이 아닌 슛돌이 아이들을 축구선수로 키워내고자 하는 지도자로서의 고민과 그에 대한 애정. 우리가 슛돌이 폐지 반대 등의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과 애정을 가질 때 그는 축구 선수를 키워내는 교육과 연속성에 대하여 그리고 슛돌이 개개인들의 능력과 미래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나도 슛돌이 팬카페에 자주 간다. 가서 본방을 못 본 경우에 다시보기로 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리고 게시판 가서 보니 팬들도 많고 운영진도 있어서 솔직히 놀랐다. 슛돌이가 종영하면 카페가 없어지고 관심도 없어지는 줄 알았는데 지속적이어서 보기 좋다. 그리고 경기 있을 때 왜 관전을 안 오나?
(슛돌이M : 사실 우리도 관전에 많이 가고 싶은데 방송에 방해가 될까봐 관전을 많이 못 갔다. 앞으로는 제작진에게도 부탁하여 많이 가고 싶다. 감독님이 좀 말해 달라.)
그런 줄은 몰랐는데 경기 있을 때마다 관전도 많이 와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응원을 해주면 더 경기도 좋고 분위기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팬들에게 정말로 정말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악성 댓글 문제이다. 슛돌이 애들은 겨우 7살 애들이다. 애들로만 봐 주었으면 좋겠다. 7살 애들 누구는 예쁘고 잘하고 누구는 못하고 이런 거 없이 다 예뻐해 주면 좋겠다. 요즘 공익 광고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게 악성 댓글이다. 부탁한다.


역시 슛돌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인터뷰를 마친 유상철 감독. 우리 운영진 또한 슛돌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실 유상철 감독에게 접근(?)하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트랙 위에서 관계자인 듯한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행여 우리가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과 또 스타를 만난다는 긴장감이 우리를 주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심스레 다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우리를 소개하고 인터뷰를 요청하니 뜻밖에 “아, 그 유명한 운영진~”하며 반겨주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우리가 긴장하며 질문을 잘 못하니 질문지를 뺏어(?) 스스로 질문하고 답해주는 적극성을 보여 주었다. 긴장감을 걷어내고 즐거운 인터뷰를 만들어 준 유상철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보낸다.


[슛돌이M | 진경 / 사진=류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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