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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슛돌이'를 만드는 사람들.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경기를 만들고 중계진이 양념을 친다면, 경기가 본래의 제 맛을 내게 하는 이는 바로 심판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심판','날아라 슛돌이' 1기, 2기, 3기 모두를 함께 해온 김미옥 심판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어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슛돌이 M' 마감을 하루 앞둔 상태에서 이루어진 귀중한 만남이라 마음은 무척 설레었다. "운동하는 사람치고 부정적인 사람 없다."는 얘기가 있다. 오전에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를 하시고 왔다는 김미옥 심판은 건강하게 밝은 웃음으로 슛돌이 M 운영진을 맞이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슛돌이 M’입니다. 생소하실 거 같은데, 슛돌이 서포터즈 카페에서 내는 잡지거든요. 1호가 나왔는데 혹시 보셨나요?

김미옥 심판 : 아유, 아직 못 봤네요. 제가 컴퓨터, 인터넷을 잘 안하는 편이라 오늘 가서 당장 봐야겠어요. (웃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국제 심판 자격증을 땄다고 들었습니다.

중, 고등부 축구 심판 보고 본업에 충실했지요. 아저씨들하고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도 하고.. 잘 지냈습니다. 국제 심판 자격증은 작년 초에 이미 시험 봐서 통과된 거구요.


축구 선수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또 여성이 축구 심판을 한다는 것도 특이한 일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축구인의 길에 들어서시게 된 거에요?

아, 저 같은 경우 참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시작했는데요. 원래는 생각이 없었죠. 제가 원래 운동을 잘 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부르시더라구요. 무슨 일인가 해서 갔더니 서울 현대고에서 이번에 여자 축구부를 창설한다고 생각있는 학생들 오디션 보러 오라고 공문이 온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추천을 하겠다고 하시는데, 처음에는 ‘웬 축구?’하면서 별 생각이 없었어요. 농구를 할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생각 해 보니 좋을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어머님이 찬성을 해 주셨죠. 아버님은 ‘여자가 무슨 축구냐?’하면서 반대를 하셨는데 결국 밀어 붙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셨군요. 그런데 축구 선수에서 또 축구 심판으로 변신하셨잖아요? 어떤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네, 처음 현대고에서 축구를 시작 했을 때, 감독 선생님이 참 좋으셨어요. “내가 축구를 하면서 많이 맞았다. 너희들에게는 학원 스포츠 폭력 같은 거 하지 않겠다.” 저희들에게 손 한 번 안대셨어요. 그러기가 참 힘들거든요. 학원축구 문화에서는.. 그래서 고등학교 때, 편하게 축구를 했는데 대학교 때에는 좀 힘들었어요. 선배도 있었고 문화가 많이 달라서 힘들었죠. 그래서 2학년 때 축구를 그만 두었어요. 그 때 그만 두면서 결심한 게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축구의 ‘축’자도 돌아보지 말자는 거랑 또 하나는 절대로 달리지 말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왜 횡단보도에서 신호등 바뀌면 사람들 막 뛰어 가잖아요. 저는 뛰지도 않았아요. 달리는 것에 하도 물려서... 그랬는데 이제 그 때 ‘앞으로는 자격증 시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라이프 가드’ 자격증을 준비하고 그런 때였죠. 그러다가 우연히 모교 (고등학교)에 찾아 갔어요. 고등학교 때 감독 선생님은 안 계셨지만 다른 선생님을 뵈었는데 그 때 그 선생님이 ‘심판 자격증’을 따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 주셨어요. 그 때 제 머리 속에 ‘아, 자격증!’ 이게 강하게 와 닿았지요.^^ 그래서 3급 자격증부터 준비해서 지금 국제 심판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습니다.


축구와 천생연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편분도 심판이시고.. ^^

아, 그런데 제가 심판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게 축구 규정이 선수 시절 알았던 것과 심판 수업 들으면서 배우는 거랑 다른 거에요. 오프사이드가 가장 민감한 거라서 오프사이드에 대한 수업이 60%정도 차지하고 다른 규정, 파울의 개념 등이 40%인데 선수 시절 알던 것과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러면 선수들이 항의하는 게 좀 이해가 되는데요?

그렇죠. 공격수 위치에 있느냐, 수비수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도 다르게 느끼는 게 심판 판정인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규정에 맞게 해야죠.


네, 그러면 이제 슛돌이 얘기로 들어가서 어떻게 슛돌이 심판으로 오시게 된 건가요?

아, 이것도 운이 좋았다고 해야죠. 원래 제가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게 ‘최수종의 골든볼’ 때 였어요. 방송이니까 좀 부드럽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주심을 여자 심판으로 하자고 했었나봐요. 그래서 방송국에서 대한축구협회로 협조 공문을 보냈는데 그 때 전국 대회 배정이 끝나고 남아 있는 여자 심판이 저하고 어떤 분하고 둘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다른 여자 심판은 키가 저보다 작고 너무 여성스러워서 남자들한테 묻히니까 제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키 때문에 된 거에요 .^^ 그랬는데 골든볼 끝나고 몇 년 후에 슛돌이가 시작돼면서 또 대한축구협회에 심판 협조 공문이 왔습니다. 방송을 해봤던 제가 여러 모로 좋다고 판단되었는지 제가 하게 되었죠.


슛돌이를 해서 사람들이 많이 알아 볼 것 같아요.

(웃음) 그렇죠. 슛돌이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집 앞에 있는 슈퍼에 뭐 좀 사러 가려고 슬리퍼 질질 끌고 머리며 옷이며 그냥 편한 대로 하고 갔는데, 중학교 남학생 세 명이 '슛돌이 심판' 아니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제가 그 몰골이었는데 같이 사진까지 찍자고 하길래, “얘들아 오늘은 날이 아니다.” 하면서 보냈죠. ^^


난감하셨겠어요. 슛돌이에 출연해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요?

잃은 건 별로 없어요. 주위에서 국제 심판이 유아들 심판 보면 뭐 다른 경기 심판으로 뛸 때 지장있지 않겠냐는 우려를 해 주시는데 별로 큰 문제는 없어요. 국제 심판으로서 더 큰 경기에 배정받고 싶은 욕심은 물론 있지만 슛돌이 영향이라고 생각하진 않고요. 오히려 심판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고 격려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도 있으세요. 그리고 슛돌이를 하면서 느낀 건데, 정말 슛돌이가 한국 축구 문화에 크게 일조를 했다는 거에요.


어떤 점에서 슛돌이가 한국 축구 문화에 일조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슛돌이 이전에는 미취학 아동이 축구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초등학생이나 되서야 방과 후 교육 같은 거라든가 학원축구가 있으니까 생소하지 않았는데 미취학 아동까지는 생각을 못했었죠. 지금은 미취학 아동의 축구 클럽이 얼마나 많아요. 1기 2기 3기 거치면서 유소년 클럽이 커 가는 거 보면 정말 슛돌이가 학부모들이나 축구인들의 인식을 얼마나 많이 바꾸어 놓았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슛돌이 M : 맞아요. 정말 슛돌이가 이 나라의 축구 시스템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친 거 같아요. 거의 새로운 산업 영역을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유소년 클럽 취재 가면 슛돌이 때문에 회원이 많이 늘고 슛돌이 덕을 많이 보았다고 해요. 그래서 슛돌이 폐지 같은 우려들이 답답한 거죠. 대한 축구 협회에서 지원 안하나 이런 항의도 있었구요. (아, 제가 너무 흥분했나요? ^^ 다시 슛돌이 얘기로 들어가 볼게요.)


아무래도 유아들이라 심판을 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유아들의 축구에서 심판을 볼 때 특히 더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많이 어렵죠. 일단 규칙들을 잘 모르니까 1기 할 때는 정말 스로인이나 파울부터 하나하나 가르쳐 주면서 했어요. 그래서 이제 슛돌이 애들은 괜찮은데, 문제는 상대팀이 항상 바뀌니까 항상 제가 가르칠 수가 없어서 백패스 같은 규정은 제작진과 협의해서 없앴죠.
 

유아들 경기에서도 분위기가 과열되는 경우에는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가 심하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시고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정말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언제나 50 대 50 으로 심판을 봤어요. 슛돌이 애들이라고 더 봐주거나 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코치 분들이 항의를 심하게 하는 경우에는 다 축구하는 사람들이고 축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인데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해요. 축구인들이 승부욕이 정말 많은데 그래서 그렇다고 이해하죠. 나중에 경기 끝나고 얘기하면 풀리기도 하고... 선수들이 항의하는 경우에는 경기 중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면 선수들이 이해를 하는데, 정말 힘든 건 관중들이 항의할 때죠. 지난 2기 양구 대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슛돌이와 상대팀 경기에서 아마 상대팀 학부모였는지 계속 “6대 7로 경기하냐? 심판 좀 똑바로 봐!” 이런 항의를 하시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관중이시니까 제가 하나 하나 설명할 수도 없잖아요.


슛돌이 1기, 2기, 3기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방송에 나오지 못한 에피소드나 재미있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1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1기 승준이 경우는 기분파라서 기분에 따라 잘 막기도 하고 못 막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정말 기분이 업되어 있는 거에요. 그 날 선방을 많이 했죠. 그렇게 웃는 모습 보니까 정말 저도 덩달아서 기쁘더라구요. 아, 또 있어요. 최승돈 아나운서의 아들 규호가 차범근 축구교실 팀으로 출전하던 때였어요. 최승돈 아나운서가 저를 외진 곳으로 데리고 가더니 “잘 봐주세요~”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웃으면서 “뭐 해주실 건데요?”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렇게 외진 곳으로 끌려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웃음)


최승돈 아나운서도 농담을 잘하시네요? 최승돈 아나운서나 이병진 씨는 어때요?

두 분은 정말 슛돌이에 대한 고민도 많으시고 애정도 많으시죠. 소탈하시고 정말 재밌으신 분들이에요. 그리고 아무래도 방송에서 슛돌이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하셔야 하니까 시청률이나 그런 면에서 고민이 많으셨어요. 슛돌이가 방송 프로그램이니까 재미를 주어야 하잖아요? 3기 때는 애들이 너무 잘하니까 상대팀하고 점수차가 많이 벌어져서 방송에 재미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고민이 많았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번 4기는 3기와는 조금 다르게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하는 모습을 뚜렷이 볼 수 있게 팀이 꾸려졌으면 하네요.


1기, 2기, 3기 각각의 특징이 있다면요?

1기는 정말 축구에 있어서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하나 하나 가르치면서 했으니까요.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승리도 하고 팀으로 만들어 지는 과정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2기는 배워 나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고 3기는 정말 완성된 팀이라고 할 수 있죠. 너무 잘했으니까요. 1기 아이들은 저를 부를 때, '아줌마'라고 했어요. 민호만 '선생님', '심판님' 이렇게 불렀죠.(웃음)


'아줌마'라구요? 정말 재미있네요. 그럼 2기와 3기 아이들은 어떻게 불렀나요?

2기 아이들은 저한테 '저기요~' 이랬어요.(웃음)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한 명이 '저기요’ 이렇게 하니 애들이 다 그렇게 부르더라구요. 그리고 3기는 '선생님', '심판님' 이렇게 불렀어요.


슛돌이 아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슛돌이는 누구인가요? 모두 기억에 남으시겠지만 특별히 콕 집어서 말씀해주세요.

음.. 성우하고 강인이요. 성우는 정말 굉장히 뿌듯한 경우에요. 1기 때는 정말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었거든요. 사람을 차는 건지 공을 차는 건지. (웃음) 그런데 이랬던 성우가 2기 때는 정말 달라졌어요. 리더가 된 거죠. 의젓해지고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고.. (슛돌이 M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이런 거죠?) 그렇죠. 축구가 그래서 좋은 거 같아요. 아이들이 자기만 알다가 동료를 알게 되고 배려하게 되고 그러면서 리더십이나 책임감, 협동심 이런 걸 배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인이는 정말 신동이에요, 신동. 정말 잘 자라서 좋은 축구선수가 되기를 바라죠.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강인이가 체계적으로 교육을 잘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슛돌이 카페 회원들 중 특히 여자 초등학생 팬들이 축구모임을 가지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이 회원들 중에는 축구를 하고 싶은데 여자라 부모님이 반대한다는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축구 선수나 축구 심판을 꿈꾸는 소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축구를 정말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의무감으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축구가 좋아서 해야 해요. 그리고 축구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정말 원하는 것인지, 미래에 어떻게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라면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 드리세요. 쉬운 말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 반대하시는 부모님들께도 한 말씀 해 주세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어요. 옛날에는 가난하고 공부 못 하는 애들이 하는 것이 축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돈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아야 축구를 할 수 있어요. 박지성, 이영표 선수와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그렇구요. 그리고 선수를 하겠다는 문제 외에 그냥 체력을 기르는 차원에서도 축구가 좋아요. 요즘 아이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또 여가시간에는 컴퓨터만 하고..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비만인 아이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잖아요? 축구를 하면서 즐겁게 뛰어다니면 체력도 길러지고 집중력도 높아지고 좋습니다.


슛돌이 또래 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중요시해야할 게 무엇일까요?

기본기죠. 기본기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해요. (슛돌이 M : 기본기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정신적인 측면에서부터 패스, 드리블 등의 기본자세를 말하는 거에요. 강인이를 보면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어요. 기본기가 잘 갖추어져 있어야 개인기를 할 수 있고 개인기를 할 수 있으면 자신있게 축구를 할 수 있거든요. 무엇이든 기본을 잘 닦아놓아야 해요.


슛돌이 4기가 출범되었는데요. 심판으로 또 만날 수 있나요?

저는 얼마든지 하고 싶죠. 아마 슛돌이 4기에서 또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꼭 만나 뵙기를 바라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축구는 정말 그냥 축구에요. 그냥 축구 그 자체로 보아야지 어떤 의도가 있거나 하지 않거든요. 축구를 즐기면서 보아 주셨으면 해요.


오랜 시간 인터뷰 해주시고 많은 이야기 들려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슛돌이M | 진경 / 사진=류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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슛돌이 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린이”, “축구”, “즐거움”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성장”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축구를 전혀 모르던 아이들이 경기에 승리하는 모습, 골 욕심만 부리던 아이가 주장이 되어 아이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슛돌이와 ‘성장’이라는 단어를 연결하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슛돌이에 나온 어린이들만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슛돌이에 나온 팀들도 성장을 한다. 그리고 그 성장이 한창인 한 축구교실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수지주니어에 대하여 간략하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근영 감독 : 2004년 5월 25일에 창단하였습니다. 축구뿐만 아니라 농구, 인라인, 유아체육, 실기체육(체력장 종목 등)을 하는 종합스포츠 클럽입니다. 30명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약 1800여명의 회원이 있습니다. 실내 인조잔디구장 1면과 강당이 한 개 있습니다. 잔디구장에서는 축구를 강당에서는 농구와 인라인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초등학교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의 강사로 활동하다가, 학부모들의 요구로 인해 수지 주니어를 창단하였습니다. 당시 축구반을 저학년 반(1,2,3학년)과 고학년 반(4,5,6학년)으로 나누어서 운영했었는데, 나이차에 의한 실력 차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학부모들께서 더욱 세밀한 반 편성을 요구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3개 학년 반을 한 개 학년 반 3개로 나눈 겁니다


방과 후 특기적성교육이 뭔가요?

교육부에서 학교의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고 학원 활동을 학교에서 하라는 취지로 만든 겁니다. 여러 개의 강좌가 개설되었는데, 축구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었습니다. 경쟁상대는 영어반이랑, 로봇 과학반 정도 였습니다.


코치분 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를 빼고 열 네 분이신데, 일곱 분이 축구 전문이시고 나머지 일곱 분은 각각의 전문 과목을 담당하십니다. 농구나 인라인, 재즈댄스 같은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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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스포츠 강사도 있나요?

아닙니다. 그 과목은 전문인에게 위탁교육을 갑니다. 수지주니어의 코치가 되기 위해서는 체육교육학과를 나와서 교원자격증을 소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축구의 경우는 지도자자격증 3급 이상과 대학이상의 선수출신이어야 합니다.


감독님께서 보는 축구전문 클럽과 종합 스포츠클럽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려 주세요.

일단 종합스포츠클럽이 전문축구클럽보다 장점이 많다고 봅니다. 학부모들께서 아이들 전부를 축구선수로 만들려는 건 아니거든요. 여러 가지 스포츠를 경험해본다는 점에서 전문축구클럽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전문성에 대해서는 적어도 수지주니어만큼은 절대로 어지간한 전문클럽에 비해 떨어지지 않다고 봅니다. 일단 코치 분들이 전부 축구에 대해 전문가이시고, 처음에 말했듯이 체육교육학과를 나오신 분들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점에 오히려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과 빨리 친해진다든지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 같은 것을 말이지요.


아이들 축구에 국가 대표급 강사의 교육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히려 유치원선생님이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아니요,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일단 기술적인 면에서 차이가 존재합니다. 고졸선수, 대졸선수, 실업축구선수, K리그선수, 국가대표선수 들의 클래스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고 봅니다. 축구가 일단 기본기가 중요한 운동이긴 합니다만 하다보면 전술에 관한 것도 다룰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것을 다루는데 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또한 아이들은 어떤 선생님이냐에 따라서 태도도 다르거든요. 자신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따라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가지는 태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클래스가 높을수록 아이들이 더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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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만의 지역 색이 있나요?

수지의 교육 열은 엄청 높습니다. '강남권 저리가라'에요. 대회나 훈련 같은 거 하려고 아이들 스케줄을 알아보면 아주 빡빡해요. 유소년 축구는 대개 즐기는 축구를 많이 표방하는데 이곳에는 이것도 교육이라고 생각하시는 부모님들이 많으십니다. 예를 들자면 저희 3~4학년 엘리트 반 학생들이 진주로 6박7일간 전지훈련을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이회택 축구교실, 홍명보 축구교실, 조영증 축구교실, 김희태 축구교실 등과 같은 아주 명문축구교실들과 같이 생활도 했었습니다. 즉석에서 같이 전지훈련 중이었던 팀들과 축구대회를 열었었는데, 1승1무1패로 아쉽게 떨어졌어요. 마지막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올라갈 수 있었는데 홍명보 축구교실에 패했습니다. 그걸 보고 같이 따라가셨던 부모님들이 수지주니어의 엘리트 반을 주2회에서 4회로 늘려달라고 요구하셨어요. 다른 팀들은 대개 주 5회였던 것 같더라고요. 그 점에 자극을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수지주니어의 성장계획은 어떤가요? 초등학교 축구부와 연계할 계획이 있나요?

저는 조만간 축구부 대신에 클럽이 한국유소년축구 시스템을 대체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전국대회를 나가기 위해서 굳이 학교축구부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얼마 전에 청소년 국가대표를 선발 했을 때 학교 축구부 출신이 아닌 일반 클럽 선수도 선발을 했습니다. 축구부라는 벽이 무너진 것 이지요. 축구부에 가면 정형화된 교육을 받습니다만, 클럽은 그 클럽만의 교육을 받기 때문에 선수들의 자율성이 충분히 발휘됩니다. 훈련시간의 문제가 따르기는 합니다만, 그건 조절하면 되는 거고요. 따라서 저는 지금의 클럽이 최고의 시설과 교육내용을 갖춘다면 충분히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저희가 250평 규모의 가로20 세로40의 풋살 구장을 신축 중입니다. 축구교실이 전용구장과 실내구장을 동시에 가진다는 게 되게 힘들거든요. 둘 다 확보가 된다면 축구부 부럽지 않은 시설과 교육시스템을 가지게 됩니다. 자율성이 보장되고 인원도 충분하니 축구부와의 실력격차는 조만간 뒤집을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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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지역의 축구클럽은 얼마나 되나요?

일단 제가 알고 있는 클럽이 약 20여개가 됩니다.


수지 지역의 인구밀도를 봐서 좀 수가 적은 것 같은데요?

수지주니어와 경쟁이 될 만한 규모의 클럽만 말씀드린 겁니다. 군소클럽은 더 많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쪽까지 파악은 하지 못했습니다.


축구라는 종목이 다른 종목에 비하여 유소년들에게 가르치기 좋은 점은 무엇일까요?

일단 단체운동이라는 겁니다. 사회성과 팀워크를 길러 주지요.
(농구나 야구도 단체운동 인데요?)
농구는 3학년이하 어린이들은 대상이 아닙니다. 농구공도 잘 못 잡을 겁니다. 그리고 키도 문제입니다. 야구의 경우는 개인스포츠에 가깝지요. 투수와 타자에 특히 집중되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혼자 자라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님들께서는 사회성에 대한 교육을 많이 원하시거든요. 농구나 야구도 분명 단체운동이긴 하지만 축구에 비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요.


‘날아라 슛돌이’ 2기와 3기에 각각 참여하셨는데. 참여하게 된 계기를 알려주세요.

양구대회를 앞두고 험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수지 주니어가 험멜을 이용하고 있고 저도 개인적으로 험멜과 인연이 있어서였거든요. 당시 좀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대회 1주 전에 참가 제안이 왔었지요. 6세 아이들 데리고 경기에 참여하려면 좀 제약이 많아요. 예를 들면 선수선발부터 시작해서 서류 만들어야하니까 등본도 떼어야하고... 좀 급했었지요. 그래서 당시 선수선발은 못했고,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서 선수단을 꾸렸습니다. 3기 때는 진짜 3일전에 연락이 왔었어요. 뭐 연습이고 선발이고 할 시간이 아니었지요.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선생님들 추천으로 선수를 뽑았습니다. 많이 아쉬웠어요.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2~3주 전에 시합을 알려주셨다면 저희도 좀더 좋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요. 수지주니어가 슛돌이 방송에서 크게 진 것만 나와서 그렇지 절대 약한 팀이 아니거든요. 각종 대회에 나가서 상위권에 입상한 저력이 있는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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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슛돌이’에 수지주니어가 출연하기 전과 후에 변화가 있었나요?

네. 당시 첫 출연이었던 양구대회가 끝나고 문의가 많이 왔어요. 겨울이라 전화만 하셨고 실제로 눈에 띄는 증가세는 없었지만 봄이 되니까 많이 오시더군요.


그렇다면 슛돌이 효과라고 할 근거가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요? 겨울에서 봄이라면 시간의 간격이 있는 편인데요.

아니요, 저는 슛돌이 효과가 확실히 있다고 봅니다. 당시 새로 가입하셨던 부모님들이 들어오면서 이야기를 꼭 하셨거든요. “아이들 축구시키고 싶은데 슛돌이에서 봤다.”면서요. 아이들도 꽤 많이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슛돌이 효과로 늘어난 회원수는 얼마나 되나요?

그때 300여명 정도 늘었습니다.


양구대회를 직접 시청해 보셨을 텐데요. 소감 한 번 이야기 해주세요.

당시 우리가 졌던 팀이 ‘SKK’였는데요. 잘하더라고요. 수지 주니어도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그러니까 성적이 좀 아쉬운 거지요. 아까도 말했듯이 1주전에 너무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3기 때는 3일이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SKK와 2차전을 가지고 싶네요.


슛돌이 3기 김유림 어린이가 수지 주니어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네. 잠시 김유림 어린이가 수지주니어에서 3기 방송 중 중간에 들어왔는데요. 지금은 겨울이라서 그런지 잠시 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 인터뷰 정말 감사드립니다. 또 맛있는 점심도 정말 감사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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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는 지금 성장 중이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가 동네는 시골마을이었지만 바로 옆에는 고층의 아파트들이 즐비한 상태. 소위 말하는 신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것. 그 잠재력이 큰 동네에서 이미 수지주니어는 자리를 잡은 상태이다. 앞으로 수지가 발전하는 만큼 수지 주니어도 큰 발전을 할 것이다. 조만간 더욱 성장한 수지주니어와 우리 슛돌이가 팽팽히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슛돌이M | 장훈일 / 사진=류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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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추운 겨울이다. 이런 날씨에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축복일 것이다. 조금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은 구리주니어의 실내 축구장에서는 구리주니어의 1학년 엘리트반 어린이들이 훈련 중이었다. 진지한 훈련태도, 발간 얼굴에 흘러내리는 열정의 땀들. 열심히 뛰어다니며 땀을 흘리는 어린 축구 선수들의 모습은 언제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갑작스런 이방인의 출현에 신기한 듯 몇몇 어린이들의 시선을 느끼며 실내구장 2층에서 이정국 감독과의 심층인터뷰를 시작했다.


구리주니어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정국 감독 :
2003년에 저 혼자 창단했습니다. 제일 처음 12명의 회원으로 시작해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현재는 800여명의 회원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리시와 남양주시에서 회원을 모집하고 있으며 작년(2007년)에 구리에 실내운동장을 마련해서 겨울에도 축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한일생명에서 4년간 뛰었습니다. 최우수선수로 뽑힌 적도 있었는데 한일생명이 해체되면서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습니다. 코치 분은 6분이 계신데 전부 대학, 프로리그 출신이고 올림픽 대표출신도 있습니다. 3급이상 지도자자격증은 전부 소지하고 있고 2급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도 있습니다. 특히 유명 하신 분으로 김창오 코치님이 계신데 연세대를 졸업하셨고 벨기에의 안더레흐트에서 설기현 선수와 같이 생활하셨던 분이십니다. 부산아이콘스에서 득점도 하셨습니다.


구리지역의 축구 열기는 어떠한가요? 축구에 대한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히는 구리와 남양주를 같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둘은 행정구역상은 다른 곳이지만 생활권은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리 하나 건너는 차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곳의 축구에 대한 잠재력은 높습니다. 구리주니어가 주최하는 축구대회가 연간 6~7회 정도 됩니다.


꽤 자주하는 편이네요?

연령별로 하니까 조금 많은 편입니다. 아이들이 경기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기도 자주 하려고 하고 있고요. 구리주니어에서 주최하는 경기에 언제나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구리지역에서 축구 인기는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구리와 남양주지역에 대략 20~30개 이상의 축구클럽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 성장할 잠재력이 높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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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주니어의 발전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한때 초등학교 축구부와 연계할 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최근에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럽축구의 장점이라는 게 학원축구가 해결하지 못하는 범위를 다룬다는 거거든요. 클럽에서 기술을 가르치고 학교축구부에 들어가서 기술과 체력을 가르치는 방법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굳이 클럽축구가 학원축구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007년 어린이날에 국가대표 출신이었던 이호 선수가 구리주니어 축구교실 행사에 참여했었는데요. 계기가 무엇인가요?

이호 선수의 에이전트가 제 한양대 후배입니다, 어린이날 행사 때 이호 선수 이외에 연예인 박경림 씨와 U-17 청소년팀 감독 박경훈 감독님과, 구리시장님도 참여하셨습니다. 박경림 씨는 제가 TV “좋은 사람 소개 시켜줘”에 출연했을 때 MC로 연이 닿았고, 박경훈 감독님은 한양대 선배님이셨거든요.


구리주니어를 운영하면서 제일 감동적인 때는 언제였나요?

처음에 12명의 아이들로 시작해서 지금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가끔씩 감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구리주니어가 주최하는 대회에 아이들이 열을 지어서 있을 때를 보면 진짜 감동이지요. 특히 작년 여름에 실내경기장을 지었는데, 저에게는 내집을 마련했던 순간보다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실내경기장이 축구클럽에서 가지는 의의는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 축구클럽의 입장에서 겨울이 되면 대개 쉬게 됩니다. 날씨가 추우니까 밖에서 하는 훈련에 대해서 아무래도 꺼려지는 게 사실이지요. 실내축구장은 그 이탈을 막는 좋은 해결책입니다. 그리고 대개 신생 축구클럽이 고생하는 이유가 운동장을 구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저도 그 문제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실내축구장을 만든다는 것은 곧 우리의 전용운동장을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더 이상 운동장 구하느라고 고생할 필요가 없어 선수교육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클럽이 성장했다는 객관적인 성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구리주니어는 골키퍼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어떤 비결이 있나요?

구리주니어의 골키퍼의 실력이 좋다는 것은 방송을 보셨다면 아실 겁니다. 저희는 유소년클럽에서는 드물게 골키퍼전문코치가 있습니다. 골키퍼를 하는 아이들에게 정규강습을 하면서 추가적으로 골키퍼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따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요?

아휴,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전문골키퍼 교육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요. 골키퍼 지망생들에게만 정규 강습 이외에 추가적인 강습을 하는 것입니다. 골키퍼를 하는 어린이들에게는 골키퍼 유니폼을 추가적으로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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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슛돌이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볼까요? 구리주니어의 출신으로 승준수, 맹호성 어린이가 유명한데요. 이 아이들에 대해 구리주니어의 감독님으로서 이야기를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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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승준수 어린이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준수는 지금 서울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구리주니어에서 뛰지는 않습니다. 구리주니어에서 뛰었던 준수는 매우 점잖은 아이였습니다. 축구할 때 공에 대한 집중력도 뛰어납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착하고 성격도 좋고요. 선수로서는 공에 대해 겁이 없어 골키퍼에 재능이 있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골키퍼를 하기 싫어하지만 준수는 적어도 슛돌이로 활동할 때 골키퍼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준수도 필드 선수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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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호성 어린이는 어땠나요?

1기 때 담당 피디께서 2기를 선발하셨는데요. 좀 큰 클럽에서 뽑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1기 때의 인연으로 2기 때 오디션에 구리주니어가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거기서 호성이가 눈에 띄었지요. 실력과 외모 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듯 했습니다. 그리고 호성이는 얼마 전까지 나갔던 UB축구교실을 그만두고 현재는 구리주니어에서만 활동하고 있습니다. 호성이의 경우는 슛돌이에 나가면서 많이 위축된 듯해요. 호성이가 좀 얌전한 성격이거든요. 2기의 동료들이 워낙 활발한 아이들이라 조용한 성격의 호성이가 좀 실력 발휘를 못한 듯합니다. 구리주니어에서 보여줬던 실력을 슛돌이에서는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어요. 구리주니어에서의 호성이는 빠르고 실력 있는 공격수였는데요. 슛돌이 2기에 들어가서 수비수를 하게 되면서 많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심리적 영향은 아주 크거든요. 최고로 잘할 때와 못할 때의 차이가 매우 큽니다.


구리주니어는 ‘날아라 슛돌이’에 두 번 참가 했는데요. 사실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습니다. 1기를 상대로는 무득점이었고요.(승부차기에서 3-0 승) 3기를 상대로는 맹호성 어린이를 투입하고서도 6-5로 패했습니다.

1기 때는 당시 출전한 아이들이 구리주니어의 정예 멤버가 아니었습니다. 3기를 상대로 한 경기에서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3기 아이들이 워낙 잘했잖아요? 2기형들도 이기고 같은 또래랑 할 때는 8점 이상 꼬박꼬박 넣는 아이들이고요. 그런 아이들을 상대로 1점차승부를 갔다는 것은 우리 선수들이 잘한 겁니다. 물론 호성이가 들어가긴 했지만 축구가 혼자 하는 경기도 아니고, 호성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다 같이 잘해줘야 그런 승부가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전에 승권이랑 성우가 나왔던 경기에서도 3기가 손쉽게 이겼었잖아요?
그리고 그때 원래는 저희도 정예멤버로 8명만 나가려고 했었는데. 어쩌다가 14명이 모이게 되었어요. 어머님들이 못나가도 좋으니까 경기장에만 같이 데려가 달라고 하셔서 일단 데리고 갔는데 또 그게 아니잖아요. 데리고 갔는데 어머님들 앞에서 어떻게 애들 그냥 놀게 합니까. 클럽감독 입장에서는 한명이라도 좀 방송에 나오는 경기에 뛰게 해야지요. 그래서 전반전에는 2진위주로 내보내고 후반에 정예멤버를 내보냈어요. 그래서 전반에는 좀 골을 먹었고, 후반에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3기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골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감독님도 거세게 항의하셨는데요.

그 당시 규칙위반이 골키퍼가 공을 던지고 다시 잡은 것이 문제가 됐었는데요. 과연 그것을 6-7세 애들이 축구하는데 불었어야 했는지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단 지금 슛돌이에서 백패스 금지규칙도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드로인 반칙도 당시는 잘 안 불었어요. (슛돌이 M: 김미옥 주심이 '풋볼 위클리'라는 잡지에서 백패스 금지규칙을 아이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플레이 시킨다고 한 것 같네요.) 심판이 아이들에게 백패스 금지규칙도 설명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어려운 규칙은 불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축구가 다른 스포츠에 비해서 규칙이 간단하기는 하지만 아이들 수준에서는 어려운 규칙이 많습니다.


당시 간접프리킥이 주어졌는데 일단 간접프리킥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나요?

당연히 선수출신들은 알지요. 그러나 어린이들이 수신호로 직접프리킥인지 간접프리킥인지를 알아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도자로서 가르쳤어야 한다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6-7세 어린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또래의 아이들은 직접프리킥과 간접프리킥의 차이점도 이해하기 매우 힘듭니다. 당시 간접프리킥이 선언되었지만 아이들은 페널티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 정도 거리라면... 어른들도 페널티킥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도 감독님은 아셨을 텐데 왜 벽을 쌓으라고 주문하지 않으셨나요?

당시 벽을 쌓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어요. 게다가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거리가 엄청 떨어져 있어서 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당시 심판판정에 대해서 많이 실망하셨겠군요.

축구를 하다보면 항상 만족스러운 판정이 나올 수는 없는거지요. 당시에는 많이 아쉬웠었지만, 그렇다고 심판을 불신한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냥 당시 기억나는 이야깃거리 라고 생각하고있어요.


아, 그렇군요. 솔직하고 깊이 있는 얘기 감사드립니다.

불쑥 찾아간 슛돌이 M을 환영해 주었던 이정국 감독과의 인터뷰는 내내 진지하고 솔직하게 진행되었다. 축구교실의 실내 축구장 마련을 ‘내집 마련’보다 더 기뻐했다는 그의 헌신적인 모습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을 위한 감독 및 구리주니어 코치진의 열정적 모습에서 우리는 구리 주니어의 더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헌신’과 ‘열정’, 2008년 1월, 우리가 본 구리 주니어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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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8.02.05 17:25
[슛돌이M | 장훈일 / 사진=류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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